모터스포츠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통 포뮬러 1으로 대표되는 내연기관 레이스일 것이다. 최초의 레이스라고 할 수 있는 1895년 파리-보르도 레이싱 이래로, 모터스포츠는 화석연료 차량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으로 불리는 포뮬러 1의 모나코 그랑프리, 세계내구선수권대회(WEC)의 르망 24시, 인디카 시리즈의 인디애나폴리스 500은 모두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경주 대회이다.
그런데 내연기관 일변도인 자동차 세계에 지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내연기관 대신 전기 모터를 사용하는 최초의 대회인 포뮬러 E가 등장한 것이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전통적 모터스포츠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2014년 자신있게 내놓은 포뮬러 E는, 출범 전 제기됐던 흥행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의 특성을 이용한 독특한 규칙과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모터스포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고 있다.
포뮬러 E의 본선 레이스는 정해진 바퀴 수를 도는 기타 포뮬러 레이스와는 달리 45분간의 내구 레이스 형태로 진행된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타이머가 시작되고, 이 타이머가 끝난 후 선두 차량이 결승선을 통과하면 마지막 한 바퀴가 시작된다. 마지막 한 바퀴를 돌 때쯤이면 차량의 배터리가 거의 다 소모되는데, 이때 배터리 관리를 위해 여러 전략을 쓰는 드라이버들의 모습도 볼 거리 중 하나이다.
모나코 서킷의 그랜드 호텔 헤어핀을 통과하는 포뮬러 E 차량들. 제공 인스타그램 @fiaformulae
포뮬러 E의 가장 큰 특징은 ‘부스트’로 일컬어지는 각종 출력 증가 수단의 존재이다. 차량의 모터는 총 250kW의 출력을 가지는데, 본선 레이스 중에는 출력이 200kW로 제한된다. 이때 묶여있는 50kW의 출력은 바로 ‘팬 부스트’와 ‘어택 모드’를 통해 끌어낼 수 있다.
팬 부스트가 활성화되어 헤일로가 보라색으로 빛나는 DS 데치타 소속 장-에릭 베르뉴의 차량. 제공fiaformulae.com
팬 부스트는 말 그대로 팬들에 의해 결정되는 부스트로, 본선 레이스 3일 전에 시작해 레이스 시작 15분 후에 끝나는 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다섯 선수에게 주어진다. 총 5초간 사용할 수 있으며, 이때 차량의 출력은 최대 250kW까지 증가한다.
어택 모드를 얻기 위해 액티베이션 존을 통과하는 메르세데스-EQ 소속 스토펠 반두른(붉은 원 안). 제공 유튜브 ABB Formula E.
어택 모드(Attack mode)는 서킷 코너 중 한 곳에 있는 액티베이션 존(Activation zone)을 통과하면 주어지는 차량 출력 증가 수단이다. 액티베이션 존은 코너의 바깥쪽 넓은 구간 등 불리한 라인을 따라 주로 설정되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코너 통과 속도에서 뒤쳐지는 대신 250kw의 출력을 일정 시간 동안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각 드라이버는 매 경기마다 최소 한 번의 어택 모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 횟수는 매번 달라진다. 출력 증가 시간과 최소 사용 횟수는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발표되어 본선 레이스에 더 큰 변수를 부여한다.
어택 모드가 활성화되면 차량의 헤일로가 푸른색으로 빛난다. 사진의 차량은 현재 은퇴한 제롬 드 암보르시오의 마힌드라. 제공 fiaformulae.com.
코너 구간에서 접전을 펼치는 선수들. 좌측부터 루카스 디 그라시, 안드레 로터러, 미치 에반스이다. 제공 유튜브 ABB Formula E.
팀들이 각자 차량을 제작해야 하는 포뮬러 1과 달리, 포뮬러 E의 팀들은 모두 같은 차량과 같은 배터리를 사용한다. 차량들의 성능 격차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미미한데, 그렇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붙어서 순위다툼을 하는 장면이 보다 더 자주 연출된다.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의 특성 덕분에 이런 접전은 더욱 치열하다. 고속으로 주행하는 레이스용 차량은 뒤에 흐트러진 공기 흐름을 남기는데, 그렇기 때문에 앞선 차량에 가까이 붙어서 공기저항을 피하는 슬립 스트림(Slipstream)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내연기관 차량의 경우 앞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와 엔진열, 타이어 및 브레이크 분진 등이 섞인 더티 에어(Dirty air) 때문에 이 기술을 오래 사용하면 엔진 냉각에 큰 손해를 볼 수 있으나, 포뮬러 E 차량은 엔진열과 배기가스가 없으므로 더욱 적극적이고 끈질긴 슬립 스트림 전략을 사용할 수 있어 더욱 치열한 레이스가 가능하다.
포뮬러 E가 최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레이스 전체 영상의 썸네일. 2020-21 시즌의 첫 번째 경기였던 사우디아라비아 E-Prix이다. 제공 유튜브 ABB Formula E.
포뮬러 E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레이스의 전체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팬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자세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으로, 다른 모터스포츠 종목에서는 비싼 요금을 주고 봐야 하는 경기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이다. 내연기관 종목에 비해 서킷의 제한도 가벼워, 내년에는 서울종합운동장에서 2주간의 레이스가 펼쳐지는 등 글로벌 확장성의 저변도 보다 넓다.
비록 내연기관 종목에 비해 속도는 느리지만,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 도래에 발맞춰 많은 신기술들의 테스트베드가 되어준 포뮬러 E가 앞으로 어떤 신선한 즐거움을 주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 청소년·청년신문 대학생기자단 장혜성]
- 본 기사의 내용은 한국 청소년·청년신문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기자단 개인의 입장일 수 있음을 밝힙니다. -